권 순 영
나도 그렇지만, 전원우도 글씨를 참 못 쓴다. 나는 우리의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투박한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우리의 집 안이 휑했다. 나는 이제 이 집이 우리의 집이 아니라 내 집이 되었다는 것을 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알았다. 전원우는 여기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 걔의 모든 짐이 사라졌다. 거울에 붙은 칫솔걸이에 걸린 칫솔은 내 것 하나였고, 양치용 컵도 하나였다. 하다못해 실내용 슬리퍼마저 없었다.
하품이 나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생리적 작용으로 삐져나온 눈물을 훔치고 편지봉투를 뜯었다. 편지지도 전원우답게 A4용지였다. 헤어짐마저 전원우다워서 웃음마저 나왔다. 정확히 삼등분으로 접힌 종이를 펼치자 걔 나름대로는 정성들여 쓴 글씨가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유성매직으로 편지를 쓰다니. 존나 너무했다.
순영아. 안녕.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날 거야. 너도 알고 있을 거라고 믿어.
내가 없어도 네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난 아마 네가 좀 그리울 것 같다.
전원우
그리울 것 같으면 떠나지 말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결국은 주저앉고 말았다. 하품을 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유성매직으로 쓴 글자 위로 떨어졌다. 유성매직도 번지는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펑펑 울었다. 전원우 없이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전원우가 있어야 한다. 전원우가, 전원우가 벌써 보고 싶었다. 전원우가 떠난 지 12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게 분명한데, 어젯밤에도 잘 자라는 일상적인 인사를 건넸었는데, 이제 전원우가 없다. 전원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걔는 웬만해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걔가 좋았고, 이제는 그래서, 걔가 원망스러웠다.
전원우는 대부분의 경우에 무표정하게 있었다. 걔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었고, 서재 책상에 앉아 두꺼운 게임용 노트북을 펼쳐 놓고 게임을 했다. 매일같이 레토르트 김치볶음밥을 프라이팬에 부었고, 선심이라도 쓰듯 나에게 같이 먹자고 말했다. 식사를 다 하고, 과일을 먹은 후, 커피까지 마시고 나면 전원우는 이를 닦았다. 그리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배를 벅벅 긁으며 텔레비전이나 보는 내 다리를 발로 쿡쿡 찌르며 얼른 이를 닦으라고 강요했다. 내가 하는 수 없이 미적미적 일어나 이를 닦고 나오면, 전원우는 항상 욕실 앞에 서 있다가 내 머리통을 붙잡고 키스했다. 전원우는 밥 먹고 나면 꼭 이를 닦아야만 키스를 해 준다. 초반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하여튼, 같이 살고 난 후부터는 매번 그랬다.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내고 억지로 시리얼까지 말아 먹은 후에 이를 닦고 나오며 나는 전원우 생각이 나서 문틀을 부여잡고 울었다. 전원우가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원우의 발자국은 현관부터 안방 깊숙한 곳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 정한이 형.”
이 집에선 하루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집 나온 거 있어? 원룸도 상관없어.”
전원우 냄새가 났다.
“형, 그리고 계약 할 때까지 나 형네 집에서 신세 좀 져도 돼?”
사실, 나는 이제 전원우 냄새와 내 냄새를 구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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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원홋전력은 무조건 당일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20분만에 급하게,,, 썼답니다.
원하시는 분이 계시면 뒷 이야기를 이어서 써보도록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