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걘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잘생겼다는 표현보다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애였다. 나는 노란색 장판 위에 발바닥처럼 들러붙어 울었다. 별 같이 반짝이던 눈동자와 어머니께 물려받은 하얀 얼굴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이고 선물이고 싹 갖다 버린지 오래 되었는데도 걔가 좋아하던 식당 간판만 생각이 나도 눈물이 났다.
헤어지자고 소리를 지른 건 나였다.
걘 알겠다고 했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사귈 때 처럼, 걘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울었다. 돌아서는 손목을 붙잡았지만 걘 뿌리쳤다. 죽고 싶을만큼 감정 없이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내가 헤어지자고 한 그 순간 걔 안에서 우리 관계는 끝난 거다. 다시 붙잡을 수도 없었다.
바다 같던 고요함에 질렸다. 톡톡 튀는 건 예전과 마찬가지였는데도 특유의 느릿한 조용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운명 같다기보단 저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다른 모습을 원했다. 걔는 한숨을 쉬며 노력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걘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더 잘해주지 말라고만 했다. 끔찍한 부탁이었다.
“보고 싶어.”
“닥쳐, 인마.”
권순영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교차해 앉아 있었다. 눈물 때문이 앞이 흐릿했지만 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권순영은 한숨을 쉬며 이지훈은 좀 이따 온다고 했다. 준휘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이 묻은 손을 내 얼굴에 털었다. 원우야, 너 세수 좀 해야겠다. 내가 물 튀겼어. 나는 그 말에 비척비척 일어나면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준휘는 늘 그렇게 다정했고, 나는 그 다정함을 걔한테서 바랐던 것만 같아서 갑자기 속이 상했다. 걘 자기 나름대로 나한테 최선을 다해서 다정했던 거였는데. 내가 놓은 손이 자꾸만 내 뺨을 쳤다. 물을 틀고 세수를 하면서도 계속 울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잘 했어, 새꺄.”
열린 문 틈으로 권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왜 그래, 힘든 애한테. 아 됐어. 저 자식도 힘들어했으니까 잘 된 거야. 잘 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이 다 거짓말인 것 같았다. 고작 이틀밖에 안 지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웃겼다. 그치만 나한테서 걔 하나 빠졌는데 모든 게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주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위성들을 주위에 달고서도 혼자 돌고 있는 목성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전원우 어딨어.”
이지훈은 들어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권순영이 구석에 찌그러진 나를 턱 끝으로 가리키는 게 유리창에 비쳐 보였다. 이지훈은 신발을 던지듯 벗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지훈은 내 머리를 한 대 쳤고, 내 앞에 앉아 언젠가 내가 걔한테 줬던 인형을 집어던졌다.
“승철이 형 존나 빡쳤어.”
“야, 나도 빡쳤어.”
나 대신 권순영이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지훈은 한숨을 쉬며 내 앞에 털썩 앉았다. 너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지훈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래, 미안하다. 나 혼자 수조 안에 들어 앉은 것처럼 귀가 멍멍했다. 걔가 키우는 거북이인 일곱이네 집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걔가 나한테 종종 일곱이 같다고 한 게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온대?”
“올 기세긴 하더라.”
“야 최한솔도 잘 한 거 없어. 그 형이 뭔데 얘한테 화를 내.”
“순영아.”
“아, 미안.”
나는 고개를 숙였다. 최한솔. 그게 걔 이름이었다.
*
승철은 씩씩대며 익숙한 빌라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잠깐 망설이던 승철은 결국 핸드폰을 꺼냈다. 원우. 다정하게 저장된 이름을 바꾸거나 지우거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통화 버튼을 누른 후에 들린 목소리는 원우가 아니라 순영이었다. 형. 왜요. 승철만큼이나 굳은 목소리였다.
“전원우 바꿔.”
저한테 얘기하세요.
“나 지금 걔네 집 앞이니까, 문 열…….”
핸드폰을 귀에 댄 순영이 문을 벌컥 열었다. 순영은 밀고 들어오려는 승철을 밀어내고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원우의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은 순영은 형형한 승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원우는 한솔이 승철에게 그런 것만큼이나 순영에게 소중한 애였다. 저 쪽은 친형제라는 점이 좀 달랐지만, 순영도 원우와 형제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까, 한솔에게 승철이 있다면 원우에겐 순영이 있었다. 전원우 씨발 쫄지마, 개새끼야. 쫄 정신도 없는 것 같았지만 순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리깐 순영의 시선에 승철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들어온다. 순영은 좀 웃었다.
“형. 여긴 왜 왔어요.”
“전원우 좀 보자.”
“걜 형이 왜요.”
“한솔이가, 밥을 한 공기만 먹어.”
“전원우는 한 숟가락도 안 먹어요.”
“야, 너 말고 전원우 나오라고 하라고.”
“됐고요, 전원우 안 내보낼 거니까 가세요. 안 그래도 애 힘드니까……!”
두껍고 단단한 손이 순영의 멱살을 쥐어 잡는다. 순영은 한숨을 쉬었다. 승철은 힘이 셌지만 순영은 유단자였다. 형 저한테 안 돼요. 승철의 귀에 속삭이며 순영은 제 몸에서 승철의 손을 떼어냈다. 승철은 곧장 순영을 대문에 밀어붙였다. 쾅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순영은 인상을 썼다.
“네가 걔 보호자야?”
“네. 전원우한테는 형이 없어서요, 제가 생일 빠르니까 형 해주기로 했어요.”
“야. 자꾸 빡치게 하지 말고,”
“형이야말로 자꾸 저 빡치게 하지 말고 가세요. 걔들 헤어졌는데 형이 왜 더 난리예요.”
“한솔이가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는다고. 그 자식 때문에.”
“씨발 전원우는 밥 한 숟가락도 안 먹는다고요.”
“나 너 칠 생각 없어.”
“전 있는데요.”
선빵필승. 순영은 승철의 턱에 망설임 없이 스트레이트를 내질렀다. 태권도를 관두고 배운 건 권투였다. 순영은 동네 골목이 아니라 경기장 위에서 날았다. 승철이 휘청거리는 걸 보고 순영은 잠깐 이대로 집 안으로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고개를 쳐드는 그의 눈빛을 보고 관뒀다. 에휴 씨바, 전원우 친구 잘 둔 줄 알아라. 승철의 훅이 그대로 순영의 배에 꽂혔다. 순영은 배를 감싸쥐고 허리를 숙였다. 전원우 내보내라고. 아님 내가 들어갈테니까. 순영은 머리만 쳐들고 씩 웃었다.
“형, 싫다고요.”
밥 한 공기나 쳐먹는 거면 많이 먹는 거네. 순영은 다리를 뻗어 승철의 가슴을 차며 입술을 깨물었다. 한솔이 멀쩡하게 산다는 건 순영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걔가 그럴 애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묘하게 무심한 애였으니까. 다만 속이 상한 건 똑같이 멀쩡할 줄 알았던 친구가 매일 방바닥에 들러붙어 울고만 있다는 거였다. 지가 헤어지자고 한 주제에. 순영은 열불이 났지만 화도 못 냈다. 남 앞에서 절대 안 울던 새끼가 지훈부터 준휘, 그리고 자신까지 있는 데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꼴이 빌어먹게 안쓰러웠다.
“야, 너 진짜.”
“걍 가세요. 피차 서로 보지 맙시다. 예?”
“내 동생 힘들게 하고 멀쩡하게 살길 바랐어?”
“아 애 안 멀쩡하다고!”
벌컥. 순영의 머리 위로 나타난 건 하도 울어 눈이 시뻘개진 원우였다. 원우는 입을 꾹 다물고 순영을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문을 앞에서 막았는지 아무리 열려고 해도 쿵쿵거리기만 했다. 결국 순영은 집 안으로 쿵쿵거리며 들어가 인터폰을 눌렀다. 원우는 힘도 못 쓰고 승철에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니가 뭔데 헤어지자고 하냐는 소리도 들렸다. 지훈은 한숨을 쉬었고 준휘는 순영에게 다가와 인터폰 앞에서 떼어냈다.
“지가 맞겠대?”
“그게 속 편하대.”
“지랄, 미친 새끼.”
최한솔이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는대. 지훈이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잦아지자 준휘가 밖으로 나가 입술이 터진 원우를 끌고 들어왔다. 힘이라도 쓰지 그랬어 새끼야. 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한솔이가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는대.
“그게 슬프냐?”
“어, 슬퍼서 죽을 거 같아.”
“그럼 네가 두 공기 먹어, 새끼야.”
원우는 현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숙이고 엉엉 울었다. 한솔이가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는대, 한 공기밖에. 존나게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한솔이가 밥을 한 공기밖에 안 먹는 것 말이다.
승철은 원우에게 네가 더 잘하지 그랬냐고 말했다. 원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그럴 걸 그랬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원우의 상처난 속은 터진 입술이나 맞은 배보다 더 아팠다. 본인도 무심한 주제에 한솔의 무심함에 베인 상처에서 자꾸만 피가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한솔이는 괜찮나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승철에게 물었을 때, 승철은 멀쩡하다고 답했다. 밥을 한 공기만 먹는 걸 빼곤. 원우는 갑자기 그게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다. 세 공기씩도 먹던 애가 왜 밥을 안 먹냐고, 그게 너무 가슴 아팠다.
*
“솔아, 헤어지자.”
“……네.”
주인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