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냄새가 났다. 낡은 피아노 앞에 원우가 걸터앉아 있었다. 한솔은 언젠가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쳤던 순간을 떠올린다. 다신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 한솔은 그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뼈가 다 어긋난 것 같이 몸이 삐그덕거렸다. 움직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솔이 커다란 저택 문을 두드리던 그 날부터 예정되어 있던 순간이었다.
“한솔아.”
“…….”
“왜 그랬어.”
한솔은 대답할 수 없었다. 보스는 이제 원우가 사라지길 원했고, 그게 다였다. 깊숙이 숨어버린 원우를 찾아내고, 접근할 수 있는 건 한솔 뿐이었으므로 그가 보내진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왜 왔어.”
한솔은 처음 벨을 누르던 때를 떠올린다. 그 때도 원우는 철문 너머로 얼굴만 내밀고 이렇게 물었다. 한솔은 뭐라고 답했던가. 보고 싶어서요. 아무렇지 않은 척 픽 웃으면서, 커다란 짐가방을 뻔뻔하게 원우의 마른 가슴에 안기면서, 그가 무뚝뚝하게 가방을 받아들고 문을 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사실은 발목에 권총을 숨기고 있었던 주제에.
“왜 왔어, 한솔아.”
“……아시잖아요.”
원우가 한숨을 쉬며 안경을 벗어 피아노 위에 내려놓았다. 금속이 나무에 닿는 소리가 선명했다. 한솔은 가만히 있었다. 원우가 마른 손에 얼굴을 묻는다.
“내가 어떻게 널 죽일 수 있겠어.”
“…….”
잠든 원우의 머리에 겨누어진 총은 발사되는 순간 천장을 향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이 한솔의 어깨에 박혔다. 원우는 한솔의 팔을 꺾어 제압하고 바닥에 쓰러트렸다. 여전히 괴물 같은 솜씨였다. 한솔은 먼지로 휩싸인 원우의 침실 천장을 멍하니 응시하며 헛웃음을 뱉었다. 이젠 잘 때 세상이 무너져도 몰라. 그렇게 말하며 으컁컁 하고 웃었던 원우가 한솔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권순영이야?”
“…….”
“이지훈?”
“…….”
“승철이 형?”
“…….”
얼굴에서 손을 뗀 원우가 앞이 흐릿한지 눈을 약간 찌푸리고서 한솔을 본다. 한솔은 어깨를 으쓱했다. 원우는 웃었다.
“손 털었잖아, 전부 다.”
“거슬린대요.”
“뭐가.”
“형이 살아 있는 게.”
원우가 한솔마저 포기하고 떠나기로 한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음을 한솔 스스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솔은 이런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한솔은 거짓말하는 걸 싫어했다. 원우가 한솔을 본다. 허망한 눈이었다. 원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문제는 사랑이었다. 보스의 동생을 사랑하다니, 간이 크구나. 민규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렇게 말했다. 원우는 아무리 맡아도 적응되지 않는 냄새에 인상을 쓰며 대답하지 않았다. 원우도 이게 찰나의 꿈이라는 걸 알았다. 떠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도, 시작해선 안 될 감정이었다는 것도 모두 알았다. 그렇지만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감정은 내리는 비처럼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느렸던 감정은 딱 그만큼 더 깊었다.
“그래서 네가 온 거야?”
“…….”
“진짜, 잔인하다.”
한솔은 고개를 숙였다. 네가 아니면 걘 문 안 열어줄 거야. 김민규도 소용 없어. 제 형의 말이었다. 승철은 한솔에게 짐가방을 안기며 덧붙였다. 확실히 해. 원우에게만큼이나 한솔에게도 가혹한 일이었다. 모든 게 시들어버린 벌판에 박힌 민들레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는 중이었다. 하필 그 때였다.
*
“형.”
한솔이 초밥을 마다하고 원우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을 때 원우는 모든 게 생각보다 심각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도 한솔을 돌려보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무실 문을 잠갔으니까. 원우는 한솔의 손을 붙잡았다. 자꾸 오면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손을 잡은 손엔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한솔은 멋쩍게 웃었다. 그렇지만, 보고 싶어서요. 형은 초밥 못 먹으니까. 원우는 혀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눈 앞에 있는 애가 버거워서 울고 싶었다.
“승철이 형이 알면…….”
“어,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면 안 되나.”
한솔이 머리를 긁적인다. 원우는 꽉 문 이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숙청당하는 건 혼자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승철은 동생을 애지중지하는 형이니까 한솔에게 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원우는 그냥 한솔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댔다. 느리게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바로 닿았다. 오래가지 않을 평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원우는 행복했다. 지금 행복하면 됐죠. 한솔은 원우의 등을 감싸며 웃었지만 원우는 그 말에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
한솔을 제압하고 묶어 놓은 건 원우면서, 원우는 제가 더 아픈 표정을 했다. 한솔은 가만히 원우의 숙인 정수리를 보았다. 사랑했던, 사랑하는 숱이 많은 검은색 머리였다. 한솔은 이 곳에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원우를 안심시키는 데 썼던 한 달 동안, 민들레는 활짝 피어버렸다. 그게 문제였다. 원우가 떠나면서 심은 민들레 홀씨 하나.
한솔아, 행복하게 살아.
깨진 안경을 쓴 원우가 피멍이 든 눈을 찡그리며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형.”
“응.”
“미안해요.”
“…….”
행복하게 사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강제로 떠난 그가 그리워서 가끔은 시린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한솔은 자신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느린 사랑의 후유증은 퍽 심각했다. 상처가 겨우 나았을 때, 승철은 한솔에게 검은색 가방을 안겼다. 한솔은 그 때 처음으로 형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민규 형.
왜.
저 가요.
원우 형네?
네.
승철이 형이?
네.
너무하네.
민규의 담배 냄새를 기억한다.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원우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뒤를 돌아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바다를 보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으니 해안가 어디쯤에 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솔은 결국 잊혀지지 않는 원우의 번호를 눌러야 했다. 한솔만 알고 있었던, 원우의 세 번째 핸드폰 번호.
형. 어디에요?
원우는 그 때 주소를 알려준 걸 후회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다만 한솔이 직접 왔다는 게 좀 슬펐다.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익숙한 깊은 눈을 보고, 원우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민규나 승철이 곧장 총구를 겨누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연 문 앞엔 아직도 종종 꿈에 나오는 애가 서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래서 더 슬픈 건지도 몰랐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웃던 얼굴은 지금도 가슴뛰게 아름다웠다.
“확실하게 하지 그랬어.”
“그러려고 했는데,”
손이 떨렸다. 도자기 같은 얼굴을 보곤 차마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한솔은 승철에게서, 원우에게서, 그리고 민규에게서 망설이면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원우가 한솔에게 사격을 가르쳤으니 원우에게 제일 많이 들었을 것이다. 망설이면 끝이야. 네가 죽어. 진지하게 말하던 날카로운 눈이 떠올랐지만 한솔은 한참 손을 떨었다.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을 때는 원우가 인기척에 잠이 깬 후였다.
“한솔아.”
“네.”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죽어주세요. 한 글자도 뱉지 못하고 혀가 말렸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살아주세요.”
“…….”
원우가 벌떡 일어나 한솔을 묶어둔 밧줄을 풀었다. 원우에게서 짠 냄새가 났다. 죽어도 안 우는 사람이었는데. 원우가 마음을 줬던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도 원우는 지나칠 정도로 냉정했다. 한솔의 뺨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한솔은 그게 자신의 눈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슬펐다. 이 상황도, 원우도, 자신도, 형도.
“가.”
“…….”
“내가 알아서 할게.”
온 몸이 망가져서 움직일 수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솔은 괜찮은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디마다 부서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걸을 수도 있었다. 한솔은 걸어서, 문이 아니라 원우의 앞에 섰다. 한솔이 손을 뻗어 원우의 마른 어깨를 잡았다.
“나가면 형 있을 텐데.”
“…….”
“위치 추적기랑 도청장치 다 달려 있는데, 나.”
“…….”
“이게 마지막이에요.”
누구의 마지막인지, 한솔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다시 없을 기회였다. 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괜찮아. 단호한 목소리였다.
“가, 그러니까.”
“형 죽는 거 보라고요?”
“그럼 뭘 어떡해. 말했잖아. 난 너 못 죽인다고.”
“와, 형 진짜.”
“네 말대로 문 열면 네 형 있을 텐데 여기서 뭘 더 어떡해.”
“……. ”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한솔은 괜히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체념한 원우에게 한솔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야. 원우가 피아노 의자에 털썩 앉으며 한숨처럼 내뱉었다.
“신파 찍지 말고 가.”
“아, 형!”
“뭘 바라는데, 나한테.”
“…….”
“도망가자고, 알았다고 말하고 문 열자마자 내가 네 형한테 총 맞고 쓰러지는 게 보고 싶은 거 아니면 지금 얌전히 나가.”
한솔이 원우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어차피, 승철이 형 눈 밖에 난 순간 끝이야. 이것도 오래 살았다, 나. 자조섞인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한솔은 차가운 문고리를 잡았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문 앞에 기대 서 있던 민규가 한솔을 끌어 제 뒤로 놓았다. 원우 형이 이래놨어? 우리 마스터피스 얼굴. 한솔은 고개를 숙였다. 형의 냄새가 났다.
“안에 있지?”
승철이 턱끝을 까딱한다.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가 먼저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다. 승철은 담배를 물었다. 원우 형 담배 냄새 싫어하는데. 한솔은 와중에 이런 생각이나 했다. 라이터를 켠 승철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원우가 뭐래. 한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철이 저벅저벅 문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안에서 큰 소리가 났다. 피아노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원우가 붙들려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솔은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힘을 쓰지 않을 원우는 민규와 승철에게 사정없이 휘둘리고 있을 테였다.
“원우야.”
승철의 목소리였다. 뒤로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한솔은 아예 귀를 막았다. 잠시 후, 승철이 하얀 뺨에 튄 피를 닦으며 걸어나왔다. 한솔은 울고 싶었다. 어렸을 때도 안 했던 드러누워 울기 같은 짓을 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형에겐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지만. 가자, 한솔아. 민규가 한솔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한솔이 뒤를 돌아본다. 작게 열린 문틈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솔은, 그냥 원우가 살아 있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한솔은 보지 못했으니까.
한솔아, 행복하게 살아.
그렇지만 아무리 현실을 부정해도 그 말만은 지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정하던 날카로운 눈과, 매끄럽게 올라가던 입술 같은 것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다시는, 도무지, 절대로.
주인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