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전원우!”
7반 문을 벌컥 열자마자 마주한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이지훈이었다. 이지훈은 나를 슬쩍 보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상 자.”
“새끼 맨날 쳐 자.”
나는 이지훈의 옆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전원우의 뒤로 가 걔의 넓은 등을 흔들었다. 아씨……. 전원우가 웅얼거린다. 나는 전원우의 등을 간질고 흔들고 난리를 쳤다. 일어날 때까지 할 셈이었다. 말라서 다 드러난 전원우의 등뼈를 꼬집었을 때, 전원우가 드디어 허리를 폈다. 죽는다 진짜. 이지훈의 다리 옆에 놓아둔 안경을 집어 쓴 전원우가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빈 의자를 끌어다 전원우의 옆에 앉으며 실실 웃었다.
“원우야앙~ 매점가자앙~”
전원우가 나를 째린다. 고작 그딴 걸로 깨웠냐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이지훈을 데려갈 순 없잖아? 내가 생각해도 좀 깜찍하게 말하자 전원우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딩 때만 해도 나랑 키가 비슷했던 전원우는 이제 훌쩍 커서 내 머리보다 위에 서게 되었다. 나는 전원우를 올려다보며 걔의 마른 팔을 붙잡았다. 전원우는 걷는 것도 느려서, 내가 잡아 끌지 않으면 안 됐다.
매점까지 가는 내내 전원우는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해댔다. 졸리다고 온 몸으로 어필하고 있는 꼴이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좀 썼나? 모르겠다. 전원우의 삼선 슬리퍼가 바닥에 직직 끌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걸음을 좀 더 빨리 했다. 늦으면 포켓몬 빵 없으니까.
“순영아.”
“왜.”
“난 야채과자.”
“아 새꺄 그 맛 없는 거 좀 작작 쳐먹어.”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 정도도 못해주냐?”
좀 찔렸다. 그래서 나는 전원우에게 야채과자를 사 주기로 했다. 그 과자는 전원우 아니면 아무도 안 먹을 것 같았다. 존나 맛 없는데, 전원우는 그걸 달고 살았다.
나는 포켓몬 빵을 사고, 전원우한테는 야채과자를 쥐어줬다. 전원우가 느리게 포장을 까고, 하나씩 입에 물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내 스티커는 브케인이었다. 나는 스티커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털고 주머니에 넣은 후에 한참 쳐진 전원우를 끌고 애들로 북적북적한 복도를 뚫었다. 전원우는 내가 없으면 백퍼 종 다 치고서야 교실에 들어갈 거다. 존나 느리니까. 얘가 육상부라는 게 진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근데 또, 뛸 땐 빨랐다.
복도를 졸라 화려하게 뚫고 7반 안에 전원우를 밀어넣은 나는 뒤따라 열린 문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계속 게임을 하던 이지훈이 나를 보고 야 쉬는시간 1분 남았는데? 했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 놨던 브케인 스티커를 전원우의 책상에다 붙이고 자리에 앉고 있는 전원우의 등을 팡팡 쳤다. 인마 이거 보면서 형 생각해. 알았지? 전원우가 세번째 손가락을 내민다. 이럴 때는 또 빨랐다. 나는 씩 웃어주고 교실을 나왔다. 종이 쳤고, 문을 닫을 땐 이지훈이 핸드폰을 책상 서랍 안에 넣는 걸 봤다.
*
점심시간엔 전원우랑 밥을 못 먹는다. 나는 국에 다 말고 마신 후에 축구 하러 존나 빨리 가야 하는데 걔는 맛도 없는 급식을 천년만년 쳐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애들한테 1학년이 뭐 하는 거냐는 쿠사리를 멕이며 이석민을 끌고 급식실에 간다. 이제 영양사쌤도 새치기하는 이석민에게 별 말을 안 한다. 내가 종종 가서 애교를 부린 게 효과가 있었나보다. 하여튼 그래서 전원우는 이지훈이랑 밥을 먹는다. 이지훈은 전원우보다 빨리 먹으면 앉아서 책상 밑으로 피아노타일 같은 걸 한다.
전원우는 느려터지게 밥을 먹고 나와서 스탠드에 앉아 있다. 가을이면 그 모습은 더 웃기다. 가디건 소매를 끌어내리며 슬슬 부는 바람에 머리가 흩날리는 걸 볼 때마다, 나는 걜 비웃었다. 아니, 사실은 거짓말이다. 뛰다가도 멈춰서서 걔가 읽는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걜 멍하게 보고 있는다. 그럼 맨날 서명호가 나한테 뭐라고 한다. 나쁜 자식. 내가 선밴데.
“순영아.”
“왜.”
“땀 냄새 난다.”
교실로 올라가다가, 뜬금없이 전원우가 한 말에 나는 당장 페브리즈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씨발.
“순영아.”
“왜.”
“봐봐.”
전원우의 손수건에서는 전원우 냄새가 났다. 졸라 많아서, 턱까지 흘러 뚝뚝 떨어지는 땀을 전원우가 손수건으로 훔쳤다. 평소엔 안 이러는데, 오늘따라 전원우가 이상한 것 같다.
“세수 좀 해.”
“담 시간 수학인데…….”
“아, 그럼 안 되겠다.”
전원우가 씩 웃는다. 물티슈라도 챙겨 다녀. 툭툭, 내 어깨를 치고 7반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튼 전원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멍청하게 땀에 젖은 머리를 긁적였다. 페브리즈가 아니라 물티슈를 챙겨야 되는구나.
순영아. 칠판 위에 전원우의 얼굴이 떴다. 초록색이라 꼭 피콜로 같아서 웃겼다. 근데 나는 꼭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서러웠다. 씨발……. 전원우는 친군데. 쌤이 전원우 얼굴 위에다 시그마 엔은 어쩌고 하는 공식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싫어서 빈 공간으로 얼굴을 옮겼다. 내가 새끼야, 니를 이렇게……. 뒷 말은 좀 낯간지럽고 부끄러워서 안 한다. 전원우는 개느려서 내가 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를 테니까. 존나, 존나, 진짜로,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