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자동차는 탈도 없이 잘 굴러갔다. 나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눈동자를 굴렸다. 빌딩들이 가득하던 창밖은 어느새 나무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엄청 시골이라더니 내 생각보다 더 심한 모양이었다.
집은 시골이 아니라 산 속에 있었다. 산 중턱에 덩그러니 지어진 대저택의 외양은 미묘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대저택을 올려다 보았다. 맨 꼭대기에 있는 창문에만 커튼이 쳐져 있었다. 나를 태우고 온 운전기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마자 저택의 불이 일제히 켜졌다. 순식간에 밝아진 주위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와중에도 커튼이 열리는 건 보였다. 윤정한이었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윤정한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학생.”
“네.”
“도련님이 학생을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지만, 조심해야 할 게 많은 거 알죠?”
“네.”
“곧 안에서 사람이 나올 거예요.”
윤정한은 가둬졌다. 대외적으로는 우울증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사실은 여기저기서 안 좋은 소문들이 들려오자 그의 부모님이 아예 그를 별장에 쳐박아 놓기로 한 것이었다. 나도 몇 개 주워들은 게 있는데, 그 소문들 중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밤마다 클럽에 출입하고, 원나잇을 즐기며 결국 누구는 임신했다더라 하는 등의 이야기였다. 악의적으로 소문을 퍼트린 사람으로서는 윤정한의 형이 유력했지만 물증이 없었다. 웃긴 이야기였다. 나는 임신을 할 수 없었으므로.
커다란 대문이 열리고 안에서 대여섯 명 정도가 나와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최승철 학생 맞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내 옆에 딱 붙어서 내가 들고 온 가방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가방 안에 마약이라도 넣어 오진 않았을까 하는 시선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가방 지퍼를 열고 안을 보여주었다. 안에는 옷 몇 벌과 속옷, 그리고 양치 도구만이 들어있었다. 그들은 잠깐 망설이더니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고, 내게 정중하게 가방을 다시 확인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짜증스럽게 가방을 넘겼다. 유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정한은 우울증에 걸릴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걔는 이런 대저택의 꼭대기에 혼자 쳐박혀 있어도 멀쩡했다. 승철아, 보고 싶었어! 솔이랑 석민이는 잘 지내? 승관이는? 윤정한의 방 안으로 던져넣어진 나에게 윤정한이 한 첫 마디였다. 걔는 몇 주 전과 다름 없는 얼굴로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거라곤 티비 한 대와 벽면을 가득 채운 책 뿐이었다. 윤정한은 책이나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고 했다. 책 읽는 취미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고도 했다.
“그래도 너 오니까 좋다. 승철아.”
“잘 지냈어?”
“뭐? 당연히 못 지냈지. 말이라고 하냐?”
윤정한이 낄낄거리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윤정한의 커다란 원목 책상에 기대 섰다. 윤정한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모든 게 재미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윤정한의 눈을 보았다. 쌍꺼풀이 짙은, 좀 쳐진 눈. 승철아, 애들 얘기 좀 해 줘. 눈이 마주친지 얼마 되지 않아, 윤정한이 눈을 접고 입꼬리를 한껏 올려 표정을 바꾼다. 나는 들고 있던 가방을 윤정한에게 건넸다. 윤정한이 가방을 받아 침대에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진짜 궁금해?”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궁금하지 인마.”
“솔이는 잘 지내. 승관이도. 석민이는 밴드 동아리 하나 더 들었어.”
“다른 애들은?”
“지수는 연휴 때 미국 간다고했고, 원우도 창원 내려갔어. 나머지는 다 너 있을 때랑 똑같아.”
“그렇구나.”
“다들 너 보고 싶대. 물주가 없으니까 아쉬운가봐.”
윤정한이 싱겁게 웃었다. 물주가 아니라 내가 그리운 거야, 승철아. 알겠어. 그런 걸로 하자. 윤정한을 제일 그리워 한 건 나였다. 보고 싶었다는 한 마디가 목에서부터 막혀 나오지 않는 이유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애의 얼굴을 보는 순간 준비했던 모든 말들이 턱턱 걸렸다. 지나치게 멀쩡한 윤정한도, 더럽게 큰 이 집도, 모든 게 슬펐다.
“승철아.”
“왜.”
“넌 어땠어?”
“…….”
“잘 지냈어?”
당장 달려들어 윤정한의 목을 끌어안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고 잔뜩 어리광 부리고 싶었다.
“너 고딩 때 나 없으면 밥도 안 먹겠다고 그랬었잖아.”
킥킥거리는 윤정한의 옆에 딱 붙어 앉아서, 먹기 싫은데 억지로 삼켰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나는 끝이 잘 손질된 원목 책상을 양 손으로 꼭 붙들었다. 몸이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았다. 윤정한이, 정말로 보고 싶었다. 보고 있는데도 현실감이 없어서 꼭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계속 장난을 치는 윤정한의 목소리는 귀에 닿기도 전에 흩어졌다. 시야가 흐려질 것만 같아 나는 이를 악 물고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보는 척 했다. 예쁘네. 간신히,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정한이 내가 좀 예쁘지. 웃기는 소리를 했다.
“승철아.”
“어.”
“이리 와 봐.”
윤정한이 자기 옆을 팡팡 쳤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윤정한의 옆에 가 앉았다. 사실 선택권은 없었다. 윤정한이 내 어깨에 머리를 대고 손을 잡았다. 관절이 흐물흐물한 윤정한의 손가락이 내 손을 더듬었다.
“딴 건 괜찮았는데, 손 잡고 싶어서 좀 힘들었어.”
“…….”
“너 오랜만에 보니까 더 잘생겨졌네. 살 뺐어?”
“…….”
잘 못 먹으니까 살이 빠졌다. 술도 음식도 들어가지 않았다. 운동이라곤 학교 걸어다나는 게 다인데도 살이 쑥쑥 빠졌다. 후배들은 훨씬 잘생겨졌다고, 보기 좋다고 하는데 내 마음이 좋지 않아서, 흔쾌히 고맙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젠 그 원인인 이 자식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너 때문이라고 화를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결국 윤정한의 품 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고 파고들었다. 윤정한이 마른 팔로 내 어깨를 감쌌다. 좋은 냄새가 났다. 이석민이 부자 냄새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보고 싶었어, 승철아. 윤정한의 마른 허리를 끌어안았다. 가슴에 닿은 귀로 일정하게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편안했다. 이게 너무 그리워서 힘들었다. 외롭고 지친 날이면 윤정한이 없다는 게 더 실감이 났다.
“힘들었지.”
“보고 싶었어.”
자꾸 이런 식으로 의지하는 건 위험한데.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윤정한이 내 어깨를 꼭 끌어안고 이마를 댔다. 나도 보고 싶었어, 승철아.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너랑 이러고 있으니까 좋다. 앞으로 못 볼 줄 알았거든.
윤정한은 방에서 나올 수 없다고 했다. 화장실과 욕실은 방 안에 있었고, 식사는 매 시간 배달 되었다. 윤정한의 문 앞은 늘 건장한 남자 둘이서 지키고 있다고 했다. 나도 들어올 때 본 사람들이었다. ‘난 회사 물려 받을 생각도 없는데.’ 윤정한이 눈썹을 내리고 웃었다. 윤정한의 손에 깍지를 꼈다.
“도망 갈까?”
“팔자 좋은 소리 한다. 그럴 생각도 없어. 형이 회사 물려 받으면 나갈 수 있을 텐데 굳이 고생할 이유도 없고.”
“…….”
“도망 가면 우린 뭐 먹고 사냐?”
“…….”
“네가 여기 계속 있어라.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은데.”
“…….”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한솔이를 떠올린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충당한다고 해도, 생활비는 벌어야 했다. 둘이서 개인 시간 없이 알바를 해도 빠듯했다.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 좋자고 한솔이를 남겨둘 순 없었다.
“그러게, 뭣도 없는 놈이 도망가자는 얘기는 왜 해.”
윤정한 앞에만 서면 할 말이 없었다. 받기만 하는 내가 비참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윤정한이 자연스레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달칵, 문이 열리고 나를 데려왔던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학생. 미안하지만 스케줄이 변경 됐습니다. 윤정한이 인상을 썼다. 약속한 건 일주일이었다. 들어온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이러는 건 말이 안 됐다.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이 윤정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예요?”
“사장님 지시입니다, 도련님.”
남자가 윤정한에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내용물을 확인한 윤정한은 나를 돌아보고, 좀 곤란한 얼굴을 했다. 씁쓸한 표정의 윤정한이 입만 움직인다. 걸렸어.
“나가시죠.”
나는 쫓겨나다시피 저택에서 나왔다. 이제야 알았다. 윤정한이 가둬진 건 형의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퍼졌다는 안 좋은 소문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아들에게 남자 애인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던 윤정한의 아버지가, 윤정한이 나와 만나기를 요청한 후 내 뒷조사를 해 우리 사이를 알아낸 것이다. 아. 차가 얼마나 급하게 달리는지, 올라올 땐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 같았던 차가 오프로드를 하는 것마냥 덜컹거렸다. 나는 가방을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윤정한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변한 것 같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
윤정한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윤정한은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졸업을 했다. 윤정한은 기사 속에서 가끔 마주칠 수 있었다. 한솔이는 뉴스를 보며 밥을 먹다가도 윤정한네 회사 얘기만 나오면 급히 채널을 돌렸다. 나는 정말 괜찮았는데 말이다.
“형, 취직했다는 회사는 어때?”
“다 똑같지 뭐.”
“우리 이사 갈 수 있나?”
한솔이가 킬킬거렸다. 노력해보자. 밥을 크게 한 술 뜨며 내가 말했다.
“나 내일 중요한 거래처랑 미팅 있는데, 그 때 한 건 해 올게. 보너스 받으면 고기 사 먹을까?”
“소고기?”
“한우지, 새끼야. 승관이도 불러.”
아싸! 한솔이가 주먹을 쥐었다. 나는 한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티비를 켰다. 윤 씨는 A그룹 계열사인 C사 팀장으로……. 하단에 스쳐가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C사. 승철 씨, 내일 C사랑 미팅 있는 거 알죠? 상사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채널을 돌리며, 나는 내일 윤정한이 나오지 않기를, 동시에 나오기를 바랐다. 심장이 뛰었다. 오래 묵혀둔 감정이 슬금슬금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는, 있잖아, 정한아. 손이 덜덜 떨려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윤정한이 너무, 보고 싶었다.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