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는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이 와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원우와 한솔은 나무 아래 스탠드에 앉아 운동장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순영이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포효하는 게 보였다. 골 넣었나 보네요. 한솔의 말과 동시에 민규가 순영에게 뛰어들어 안긴다. 원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한 세레모니가 끝나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친구들을 보다, 원우는 한솔의 옆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한솔이 제게 꽂히는 시선을 느끼고 원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햇빛을 받아 더 선명해진 한솔의 호박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원우는 가디건 소매를 끌어내렸다.
“공룡이 진짜로 존재했을까?”
한솔은 이 형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웃기지도 않은 질문을 던져 놓고 원우는 한솔을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학책에 나와 있잖아요.
“그렇지만, 신기하잖아.”
마주보고 있는 원우와 한솔의 너머로 두 번째 골을 넣은 순영이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솔은 끝내주는 순영의 세레모니를 한 번 더 관람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원우의 날카로운 눈을 벗어날 수 없었다.
“공룡이 살았다는 게.”
“……그렇네요.”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우가 고개를 운동장 쪽으로 돌렸다. 안 신기한 거 다 알아. 낮고 작은 목소리가 온통 시끄러운 틈을 헤치고 한솔의 귀에 쿡 박혔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한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공룡의 외형에 관해서 논란은 있을지 몰라도 공룡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나? 한솔이 순영보다 머리 하나는 큰 민규가 실책을 하고 순영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세상엔 특이한 사람들이 많으니 공룡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싶었다. 하지만 정설은 공룡은 존재했으며 운석 충돌로 인한 빙하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한솔은 어릴 때 공룡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도, 공룡의 실존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은 없었다. 공룡이 진짜로 존재했을까? 신기하잖아. 원우의 목소리가 한솔의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들어가자.”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원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훌훌 털었다. 한솔은 여전히 조금 멍한 채로 일어나 교실로 돌아가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원우의 커다란 뒷모습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원우에겐 공룡이 존재하는 게 신기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던 것이다. 한솔은 그렇지 않았다. 공룡은 존재했을까? 정말로? 한솔이 원우를 제치고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원우는 한솔을 부르지 않았다. 타박타박,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올라가는 한솔의 등 뒤로 특유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승관아.”
교실 문을 벌컥 연 한솔이 바닥에 앉아 살구를 하는 승관을 불렀다. 승관이 한솔을 돌아본다. 한솔은 승관의 옆에 풀썩 앉아 그의 둥그런 눈을 보며 물었다.
“공룡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뭔 소리야, 최한솔.”
“……신기하지 않아? 공룡이 살았다는 거.”
“너 나가서 축구공에 맞았냐?”
“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
“교과서에 나오잖아. 화석이랑 뭐, 백악기, 중생대, 그런 거. 과학자들이 괜히 있냐? 우리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 말인데 맞겠지.”
“그치?”
“근데 갑자기 웬 공룡? 화석이라도 봤어? 그거 신고하면 돈 준대.”
승관이 살구를 바닥에 촤르르 던지며 물었다.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공룡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승관에게서 한솔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답변을 받았음에도, 원우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정작 원우는 공룡에 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솔은 과학 교과서를 뒤적였다. 한솔은 교과서의 삽화를 보며 어쩐지 원우가 거대한 초식 공룡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승관아.”
“왜.”
“원우 형 있잖아.”
“어.”
“울트라사우르스 같지 않냐?”
“뭔 소리야.”
승관의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한솔은 그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울트라사우르스. 단편적인 뼈 조각만 발견된, 학계에선 이름조차 인정되지 않는 그 거대한 공룡 말이다.
*
그 날 밤, 한솔의 꿈에 울트라사우르스가 나왔다. 6층에 위치한 한솔의 방 창문을 머리로 툭툭 두드린 울트라사우르스는, 한솔이 창문을 열자 작은 머리를 쑥 들이밀고 한솔에게 인사했다.
안녕.
한솔은 울트라사우르스의 매끈한 머리를 만졌다. 울트라사우르스는 별 말 없이 한솔의 손 아래에 머리를 가만히 내어주었다. 한솔은 방에 있는 화분에서 잎을 몇 개 뜯어 울트라사우르스에게 내밀었다. 울트라사우르스는 작은 잎을 우물우물 씹으며, 사실 이런 걸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솔은 웃었다.
친구, 나를 믿어?
오래오래,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만큼 작은 잎을 씹어 넘기고 나서 울트라사우르스는 그렇게 물었다. 한솔은 대답하지 못했다. 울트라사우르스는 웃었다. 한솔이 울트라사우르스의 머리에서 손을 뗀다. 울트라사우르스는 한솔의 방에서 머리를 뺐다. 창문 밖에 떡 버티고 선 울트라사우르스가 한솔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널 닮은 사람은 알아.
울트라사우르스는 답이 없었다. 한솔은 울트라사우르스와 가만히 눈을 마주했다. 한참 후에, 울트라사우르스가 물었다.
너, 날 좋아하지?
눈을 뜨자, 가을의 아침햇살이 한솔에게 내리쬐고 있었다. 한솔이 눈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솔은 울트라사우르스가 사라지기 직전, 가디건 소매를 끌어내리던 원우로 변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솔은 얼떨떨한 채로 머리를 감기 위해 욕실로 걸어가며 창문 밖에 서 있던 울트라사우르스를 떠올린다. 그런 거대한 생물이 지구에 살았다니, 신기하기도 한 것 같았다.
*
“형.”
이번에는 민규가 골을 넣었다. 커다란 민규가 펄쩍펄쩍 뛰며 원우와 한솔이 앉아 있는 쪽을 보며 소리를 지른다. 봤어???? 봤어??????? 원우는 민규를 향해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한솔을 보았다.
“공룡, 좀 신기한 것 같아요.”
“그래?”
“네.”
“…그렇구나.”
“형.”
원우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한솔을 바라본다. 한솔은 그 시선에 괜히 귀가 달아올랐다. 이상했다. 어젯밤 꿈에서 본 울트라사우르스와 같은 표정이었다. 너, 날 좋아하지? 울트라사우르스가, 아니, 원우가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한솔은 조금 울상이 된 채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한솔아, 왜 그래?”
“아, 아니에요. 순영이 형 골 넣었다.”
한솔이 귀를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내애가 권순영이드아아아!!!!!! 온 학교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순영의 목소리에 원우가 아, 권순영. 하며 코를 찡그리고 웃었다. 한솔은 어색하게 따라 웃으며, 제 옆에 떡 버티고 앉은 울트라사우르스를, 모른 척 하기 위해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