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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원우 외전

*원커플링 정쿱. 원우로는 커플링 없음.




전 사장. 처음으로 그렇게 불리던 순간, 원우는 쑥스러운 미소를 띄웠다. 지훈은 원우보다 한참 아래에 서서 손을 뻗어 원우의 뺨을 툭 쳤다. 야. 정신차려. 원우는 그 때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네가 기어 들어온 거야. 알았지. 원우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우는 승철의 팀에 꽂혔다.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과자를 까먹다 배시시 웃던 민규와 자신을 민규에게 소개시켜주던 승철, 그리고 세 달 후 사무실로 들어온 작았던 한솔까지. 원우는 이 애들이 좋았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문제는, 시스템이었다. 원우와 승철은 민규와 한솔을 굴리는 일을 맡았다.

*

원우는 언제나 조금 느리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사무실 책상에 뺨을 대고 늘어져 있던 원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 혜연 누나! 하며 벌떡 일어난 민규가 나간지 두 시간만이었다. 원우는 책상 위에 쌓여 있는 파일들을 뒤적여 검은색 파일 하나를 찾아냈다. 주혜연. 파일 맨 위에 있는 이름이었다. K그룹 사장. 원우는 이름 옆에 붙어 있는 그녀의 사진을 가만 쳐다보았다.

주 사장이 처음 더블유에 왔던 날, 원우가 그녀를 독대했다. 원우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민규를 떠올렸다.

키가 크고, 좀 까무잡잡한 애였으면 좋겠어. 남자다운데 귀여운 맛도 있고.

원우는 민규를 그대로 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안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주 사장의 앞에 촤륵 펼쳤다. 원우는 중간쯤 꽂혀 있는 민규의 카드를 뽑아 주 사장 쪽으로 밀어놓았다. 이 친구가 딱인 것 같네요. 주 사장은 기분좋게 웃었다. 일단 한 번 보고. 지금 있나? 원우는 말없이 버튼을 눌렀다. 사무실과 바로 연결된 버튼이었다. 1분도 안 되어서 민규가 내려왔고, 주 사장은 환하게 웃었다. 어, 누나! 진짜 예쁘네요! 원우는 주 사장을 향해 목례를 하고 문을 나서며 민규는 진짜 타고난 애라고 생각했다.

주 사장은 민규를 소유하고 싶어했다. 원우는 민규의 이름 아래 쓰인 수많은 이름들을 쓸었다. 다 정리시키랬잖아! 히스테릭한 목소리에 원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우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지훈은 원우의 그런 점을 가장 좋아했다. 넌 웃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 원우는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웃지 않았다.

“원우야.”

원우가 손목을 틀어 시계를 확인한다. 아홉시 반에 이렇게 불쑥 문을 열고 들어올 사람은 순영 뿐이었다. 순영이 간이 의자를 구석에서 집어와 원우의 앞에 펼치고 앉는다. 그거 들었어? 원우가 그제야 뺨을 떼고 나른한 눈으로 순영을 바라본다. 작은 눈이 한껏 커다랗게 떠진 걸 보니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승철이 형 이제 정한이 형만 맡는대.”
“사장님 지시야?”
“아니. 그래서 이지훈 개빡쳤어.”

원우가 입술을 닫는다. 순영은 원우의 뾰족한 입술 산을 보다 에휴, 새끼. 들고 온 비닐봉지를 책상 위에 턱 올려놓았다. 순대나 먹자, 인마.

“지훈이랑 준휘는?”
“둘 다 바빠. 여기 다른 애들은 다 어디 갔어?”
“승철이 형은 정한이 형 따라 갔고, 한솔이는 3번 룸, 민규는 주 사장님 콜.”
“주 사장? 이지훈 요즘 안 좋은 거 주 사장 때문이잖아. 김민규 거기 나갔어?”

원우가 순대에 소금을 찍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쌈장 안 줘? 말을 돌리려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순영은 당연하지~ 여기가 창원이냐? 대충 대답하곤 그래서, 김민규 갔냐고. 다시 원우를 추궁했다. 그렇다니까. 원우가 순대를 우물거리며 아직 펼쳐진 파일을 탁 덮었다.

“이야~ 그 새끼도 징하다. 이지훈이 불러서 말로 개 후렸다던데.”
“닌 대체 그런 걸 다 어떻게 아냐.”
“회사 돌아가는 일 모르면 내가 권순영이겠냐? 권순대지.”

그 말에, 원우가 그제야 낄낄거린다. 순영은 앞에 내밀어진 하얀 손바닥에 제 손바닥을 찰싹 내리치고 순대를 집어 입 안으로 쏙쏙 밀어넣었다. 2013년 봄, 더블유 H팀 사무실은 평화로웠다. 원우가 있는 곳이면 으레 그렇듯.

*

원우는 이제 그만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반쯤 차 있는 맥주 캔을 내려놓으며, 관두고 싶다는 원우의 말에 지훈은 가소롭다는 듯 안 된다고 대답했다. 원우는 자신의 오랜, 작은 친구의 멱살을 쥐어 잡고 싶은 걸 참느라 주먹을 꼭 쥐었다. 그렇게 하더라도 금세 쳐내질 게 뻔했다. 원우는 힘이 없었으니까. 원우는 지훈 대신 맥주캔을 찌그러트렸다. 지훈은 일렁이는 강을 보며, 원우야. 하고 말을 시작했다.

“이미 시작한 일은 돌이킬 수 없어.”
“…….”
“안 그래도 여기는 좀 특별하잖아?”

원우는 야경 속에 잠기고 싶었다. 차라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지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갤러리의 어두운 조명이 아니라 해를 보며 살고 싶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안 그래도 순영이가 너 좀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하던데.”
“걔가 그래?”
“괜찮지?”

괜찮을 리가. 원우는 코웃음을 쳤다. 사람을 사고 파는 일에 가담하는데 괜찮을 리가 없었다. 지훈은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호스트들의 번호를 관리하고, 넘기고, 돈을 받고, 그런 일들을 했다. 원우는 통장으로 거액이 꽂힐 때마다, 민규가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갈 때마다, 준휘가 빙긋 웃으며 사모님! 하고 말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지훈이 힘내자, 전상. 원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작은 손이 어깨에 턱 하고 얹힌다. 원우는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로 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그들처럼 꺄르륵 웃으며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앞만 봐. 지금처럼. 그렇게 말했다.

“넌 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이지훈. 그거 알아?”
“뭐.”
“너 진짜 개자식인 거.”

지훈은 이번에도 꺄르륵 웃었다. 알지, 그럼. 사투리가 섞인 말투는 원우의 것과 닮아 있었다. 원우는 그래서 제 혀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억양을 떼어내고 싶었다. 지훈과 닮아가고 싶지 않았다. 갤러리의 일부분이 되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거래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원우가 꿈꾸던 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준휘랑 순영이 오랜만에 일찍 끝나는 날인데 부를까?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좀 놀자.”
“맘대로 해.”
“전원우.”
“왜.”
“절대 안 돼. 마음 접어.”

지훈이 핸드폰에서 순영의 이름을 찾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원우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원우는, 언젠가는 반드시 떠날 테였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뒤를 훌훌 털고, 더블유 갤러리 쪽으론 시선도 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원우가 승철, 정한, 지수, 지훈, 준휘, 순영, 석민, 민규, 한솔, 그리고 찬의 얼굴을 순서대로 떠올리다 눈을 깜빡였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건 한솔을 데리고 더블유를 위풍당당하게 빠져나갔던 승관이었다. 원우는 어어~! 한강 좋지! 핸드폰 너머로 삐져나오는 순영의 목소리를 듣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자신의 행복이 먼저여야 했다.

*

“원우야. 무슨 일 있어?”

준휘는 언제나 다정하게 물었다. 원우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고개를 저었다. 없어. 표정이 안 좋아서. 준휘가 걱정스러운 눈을 한다. 원우는 정말로 괜찮다고, 고개를 저었다. 옆에선 순영이 손을 휘저으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밤바람에 주변의 모든 것이 느리게 흔들렸다. 원우는 저도 모르게 함께 몸을 흔들거리며 자연스레 제 쪽에 다가온 준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준휘의 옷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났다. 원우는 숨을 꾹 참았다.

“야야야, 전원우.”
“왜.”
“정한이 형한테 렌즈 들어간 거 아냐?”
“무슨 렌즈.”
“승철이 형 찍는 거.”

사장님도 졸라 징하다. 순영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훈은 무표정하게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준휘는 이미 들었는지 칭따오만 홀짝였고, 원우는 대답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순영만이 잔뜩 흥분해서 이건 진짜 대박이다! 하고 있었다. 웃긴 풍경이었다. 정장을 입은 어린 남자애들 넷이 한강변에 앉아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원우는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일 얘기 그만 하자.”

그래서 원우는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에휴. 씨바. 밖에 나와서도 더블유 얘기 하기 징하다. 그지?”
“응.”
“우리끼리 노래방이나 갈래?”
“노래방 좋다!”

준휘가 벌떡 일어나 빈 캔을 발로 밟으며 외쳤다. 얼결에 바닥으로 쓰러질 뻔 한 원우가 야 문준휘! 소리를 지르자 준휘가 바로 미안미안. 두 손을 모아 사과한다. 원우는 아, 진짜! 짜증을 내며 이제야 조금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노랗게 탈색한 순영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지훈이 주머니에 손을 꽂고 앞장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제 조금 살 것 같아서, 원우는 오랫동안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누가 한 말이더라. 원우는 더블유 갤러리의 유리문을 열며 생각했다. 아. 책 제목이었지. 원우는 목에 걸린 카드를 출입구에 찍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지금 원우와 지독하게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형! 느릿느릿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원우의 등을 툭 친 사람은 찬이었다. 원우는 싱긋 미소를 짓곤 찬의 어깨에다 팔을 둘렀다. 아, 형. 찬이 짜증내는 건 당연히 예상한 일이었기에, 원우는 아무렇지 않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오늘 여기 박 사장님 뜨는 거 알아?”
“박 사장? 어떤 박 사장?”

형은 아는 게 뭐야. 찬이 15층과 17층을 차례로 누르며 핀잔을 준다. 원우는 허허 웃기만 했다. 원우가 신경 쓰는 일은 민규의 스케줄과, 간단한 서류들 뿐이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K건설 박 사장. 정한이 형 초이스 했대.”
“정한이 형 바쁘겠네.”
“근데 그거 알아요?”

찬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원우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찬은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을 둘러보더니 입을 가리고 원우에게 속삭였다.

“그거 승철이 형 실물 보려고 그런 거라는 말 있다?”
“…….”
“정한이 형 옆에 승철이 형 맨날 붙어 있으니까.”

원우는 정말로 이 회사가 좆같았다. 15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찬이 아, 도착했다. 손을 흔들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원우는 찬의 뒷모습을 보다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울리는 전화를 받은 원우는 고객 관리 지침도 잊고 그만 수화기에 대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승철 군 초이스 하고 싶은데요. 수화기 너머의 여성은 아무런 설명 없이 그렇게만 말했다. 원우는 이지훈 관장님께 문의하세요. 딱딱하게 대답하곤 채널을 돌렸다. 의자에 파묻혀 핸드폰 게임을 하던 민규가 승철이 형 찾지? 하고 묻는다. 원우는 모든 것에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승철이 형 비디오 판다더니 요즘 그 형 찾는 전화만 와. 내가 그 형은 호스트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어요.”
“대체 누구 생각이야, 그거?”
“사장님이랑 지훈이 형의 합작품이지.”

돈 냄새는 귀신 같이 맡잖아, 그 인간들. 민규가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 시킨 채로 킥킥거렸다. 원우는 쿵, 원목 책상 위로 이마를 쳐박았다. 아, 관두고 싶다.

“형.”
“왜.”
“이따 된장찌개 먹을래?”
“…….”
“싫어?”
“아니.”

여기도 사람 사는 데야, 인마. 넷이서 노래방을 갔던 날, 계속 구석에 쳐박혀 있던 원우에게 순영이 한 말이었다. 5년 넘게 굴렀으면서 왜 그래. 원우는 5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야 현실이 보이더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마이크를 쥐었다. 원우가 예약한 노래가 기계에서 구슬픈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민규야.”
“응.”
“된장찌개 말고 삼겹살 먹자.”
“그 때 된장찌개 시켜도 돼?”
“응.”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형이 쏘는 거지?”

아직은 살만 하니까.

“알겠어.”

아직은 버틸만 하니까.

“아싸. 누나들은 된장찌개 잘 안 먹으러 가려고 해서 요즘 못 먹었단 말이야.”
“야. 너는 얼굴 팔아 먹고 사는 애가 된장찌개 같은 얘기를 하면 어떡해. 그 사람들 앞에서.”

어쨌거나 원우도 더블유에서 오 년 넘게 구른 인간이었다. 생각은 언제나 그런 쪽으로만 굴렀다.

“앞으로 고객들 앞에서 된장찌개의 된자도 꺼내지 마. 알았어?”
“아, 예. 알았네요.”
“주 사장은 특히 안 돼. 알았지?”
“아, 그 누나 취향은 내가 그 누나 남편보다 잘 알 걸?”

원우는 이런 말에 웃는 자신이 싫으면서도, 아무래도 이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더블유를 관둔다고 했을 때 딱 하나 아쉬운 부분이었다.

“형, 사랑해~”
“징그러워.”
“왜. 지훈이 형이 형한테 잘해주래.”
“그런 말은 나한테 하는 거 아니야, 바보야.”
“아 또 실수했네. 혼나겠다. 비밀로 해주면 안 돼?”
“알았어.”

원우는 잠깐 관두기 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는 이들을 못 볼 거라는 생각을 하니 곧 눈물이라도 날 것처럼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원우는, 더블유를 나설 것이다. 의자와 책상을 남겨두고, 훌훌 떠날 것이다. 그건 변하지 않을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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